즐겨찾기

최근게시물

자료실
     단군朝鮮연구회
     자료실
     연구회갤러리
자료실
HOME > 자료실 > 자료실

두 번 솟는 눈물, 글자도 자기 것이라는데...

운영자 2012-05-29 (화) 13:41 14년전 4732
 
본 내용은 금일 전 육군 장성이셨던 분이 메일로 보내온 것입니다.
여러 면에서 다같이 생각해 볼 이유가 있다 생각하여 올렸습니다.
우선 6.25전쟁시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12구가 공군C-130 수송기편으로 공군 서울공항에 도착하여 이땅에 안장이 되어 자식을 키웠던 마음으로서 가슴이 뭉클했음과,그때 당시 장렬하게 전사한 민족의 아들들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아래편 '文字'는 '古代金文'을 연구하고 古 金文으로 '古代朝鮮'을 찾고 '古代朝鮮'속에서 '國祖檀君'을 찾는 본인으로서는 중국에서쓰고있는 '漢字'와 우리 '古代朝鮮文字'는 다릅니다.
'漢字'이전의 문자(약4,700여년전)가 우리 문자이고, 그 당시 문자발음이 지금의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언어로 발음이 되기 때문에
중국에서 주장하면 할수록, 그것은 우리민족을 드러내는 일이기에
청동기 명문에 기재되어 있는 이상, 달리 주장을 한다 하여도 전 인류가 받아 들일 수는 없게 될 것입니다. 
이 홈피에 들러보시는 분들에게 잠시 참고가 되었으면 해서 올렸습니다. 5월 29일 (화) 홍혜수
      
   두 번 솟는 눈물
 두 번 솟는 눈물

6.25 전쟁 당시 북한에서 전사한 우리군 유해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국내로 봉환됐다. 1950년 12월 함경남도
장진호전투 등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 12구가 공군 C-130 수송기편으로 하와이를 출발해 25일 오전 8시45분께 공군서울공항에 도착했다.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는 6.25전쟁 당시 국군으로 입대해 미군에 배속됐던 카투사들이다. 지난 2000년에서 2004년 사이 미국이 북한지역에서 발굴한 뒤 하와이의 미 합동전쟁포로실종자사령부(JPAC)에서 신원확인 절차를 거쳤다고 한다. DNA 검사 등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고 김용수 일병, 이갑수 일병은 6월 중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이 기막힌 역사적 사건은 미국이 북한지역에서 미국군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실이었다. 우리 정부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북한 지역과 비무장지역 내 미발굴 유해는 약 3,4만여 구에 이른다. 이번에 조국 품으로 돌아온 용사는 김 일병의 유해와, 이 일병의 일부 유해뿐이다.

                                      장전호 전투의 두 용사
로런스 당시 소령은 6·25전쟁이 발발한 뒤 1950년 9월 15일 미 해병 1사단 제7연대 보병 2대대 소속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다. 인천상륙작전에 앞장섰던 미 해병 1사단은 전선을 미 8군에 인계한 뒤 인천에서 철수해 10월 말 원산에 상륙했다. 선봉에 선 해병 7연대는 11월 25일 개마고원 장진호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이틀 후인 27일 밤 중공군이 대공격을 감행했다. 부대원 절반이 전사했지만 간신히 이를 막아냈다. 11월 27일부터 12월 1일까지 중공군은 특유의 인해전술로 총공세를 펼쳤다. 로런스 소령은 장진호 전투에서 당시 스트레스로 제구실을 못한 대대장과 중상을 당한 부대대장을 대신해 지휘관으로서 2대대를 이끌었다.
해병 1사단이 포위돼 전멸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 전국도 일대 긴장에 휩싸였다. 만주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도 이 무렵이다. 12월 6일 미 수송기를 통해 보급품을 지원받은 1사단은 차량 1000대를 이용해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극적으로 흥남으로 이동했다. 이때 선봉에 선 부대가 바로 로런스 소령이 이끈 부대, 올리버 스미스 사단장은 “우리는 후퇴가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 공격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치열한 전투로 중공군의 대대적인 남하를 지연시킨 1사단은 12월 15일부터 흥남에서 선박을 동원해 수많은 피란민과 함께 철수했다. 바로 이들이 그리워했을 고국 땅에 62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학도병 김용수 일병은 6·25전쟁 때 18세,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에서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온 중공군과 맞서다 장렬히 전사했다. 장진호 전투는 영하 30도의 혹한에 유엔군 1만5,000여 명이 중공군 12만 명에게 포위돼 전멸 위기에 몰렸다가 포위망을 뚫고 나온 세계 전사의 한 페이지다. 격렬한 공방전 속에서도 10만 명의 피란민을 이끌고 ‘흥남 철수’로 이어진 감동의 대하 드라마였다.
33세의 이갑수 일병은 젊은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남겨놓고 장진호 인근 하갈우리 전투에서 산화했다. 개마고원 장진호 협곡에서 겹겹이 둘러싼 포위망을 뚫고 40km를 철수하면서 치른 이 전투에서 미군은 전사 393명 등 총 2,621명의 손실을 입었지만, 중공군은 약 4만5,0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전투 영향으로 중공군의 함흥 지역 진출이 2주일이나 지연됐고 흥남철수가 이뤄질 수 있었다. 중공군 9병단은 이후 전장에 나서지 못했고, 제3차 공세(1·4 후퇴를 부른 중공군 공세)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미8군 등 서부전선의 유엔군도 퇴로 차단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장진호전투는 2차대전 때의 스탈린그라드전투와 함께 세계 3대 또는 2대 '동계 전투'로 불린다.
이번 역사적인 행사에는 당시 전투에 참전했던 30여명을 비롯하여, 미국측 참전용사 170명과 국군 참전용사 270여명, 한·미 현역 장병과 시민 등 2,000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 역사적 의미와는 어울리지 않게 참으로 초라했던 것이다. 대통령이 문화체육부 장관에게 지시하고 문체부 장관이 방송국들에 그 의미를 전달했더라면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 이처럼 초라하게 묻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옛날 같으면, 절대로 이 엄청난 사건이 이번처럼 묻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명박은 이들을 현충원에 안장했다
이명박과 김관진, 김상기 육군참모총장,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사령관은 5월 26일, 서울공항에서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 유엔기 등으로 구성된 기수단과 함께 정중한 예우를 갖춰 김 일병 등 12구의 유해를 맞았다. 북한 땅에서 발굴된 국군전사자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된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이었다.
이들의 유해 봉환은 국군으로 입대해 미군에 배속된 카투사였기에 가능했다. 미국이 2000∼2004년 북한에서 유해를 발굴해 신원 확인 작업을 하던 중 이 일병은 인식표가 함께 발굴돼 유족을 찾을 수 있었다. 김 일병은 한미 합동으로 이뤄진 DNA 감식을 통해 우리 국군임이 확인됐다. 조국의 이름으로 싸운 군인들을 잊지 않고 세상 끝까지라도 찾아가 유해를 수습하는 미국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우리도 ‘나라를 위해 희생된 장병은 반드시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지로 북한 땅과 비무장지대(DMZ)에 묻힌 5만여 국군 전사자를 찾아내 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

                           이들이 조국을 찾은 날, 빨갱이들은 지랄했다.
진보당의 박원석 ‘새로나기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현충원 참배를 권유하는 것은 부당한 강요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곧 19대 국회의원이 될 이 자가 바로 “국민이 불편해한다면 애국가를 부를 수도 있다”고 인심 쓰듯 말한 인간이다.
이정희 전 통진당 공동대표는 북한의 6·25 남침에 대해 “역사적인 논쟁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서 나중에 답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 여자의 남편인 심재환(변호사)은 “6·25 남침을 부정하면 주사파가 되느냐” 며 단말마적 항변을 했다. 북한으로부터 점수를 따려 한 말들이었다.
이 역사적인 유해봉환 식은 YTN 등, 몇 개의 종편만을 통해 중계됐다. MBC, KBS, SBS 등 공중파들은 그 시간에 시시껄렁한 토크쇼나 내보냈다.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대답 못하고, 북한을 내재적 접근법으로 이해해야한다는 진보당의 작자들이 궤변을 쏟아놓는 시사토크 프로그램 시간까지 마련해 줬던 MBC는 그 시간에 한 여배우의 남자관계를 추적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내보냈다고 한다.

                        박근혜는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할 말 없는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차기 대선에 진출하여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간들은 참으로 감격스럽고 참으로 의미 깊은 이 순간을 맞아하여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실직고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박근혜는 이 감격의 순간을 전 국민에 극적으로 전달하지 않은 방송사들에 대해 최소한 자성을 촉구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이 나라를 지키다가 어린 나이에 산화한 후, 62년만에 고국을 찾은 호국 영정들을 맞이하는 그 감동적인 역사적 장소에 열일을 제치고 나갔어야 했다.
이렇게 개념 없는 여인이 내일 모레면 대통령이 된다 하고, 그녀가 하는 일이면 무조건 “여왕 폐하, 지당하십니다”를 외치는 무리들을 바라 보느라면 그 역겹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2012.5.28, 지만원-

 
글자도 자기 것이라는데... 우리는 내 글자도 버리나?
金昌辰(草堂大교수)
엊그제 報道된 記事가 우리에게 衝擊을 주고 있다. 中國이
컴퓨터에서 한글 입력 방식의 國際 標準 制定 운동에 앞장 섰다고 한다.
中國이 古朝鮮과 高句麗까지 자기들 歷史라고
주장하는 "歷史工程"에 이어서 마침내는 "文字工程"까지 시작했다니
韓國 국민의 衝擊이 크다.

얼마 전에 中國이釣魚島를 놓고 日本과 領土 紛爭을 벌여서
日本을 완전히 깔아뭉개버렸다.
이제 中國은 세계 2위 經濟 大國의 힘을 바탕으로
세계의 超强大國으로 浮上하고 있다.
그러는 一環으로 주변 국가인
韓國과 日本부터 制壓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 韓國人이 "固有 글자"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한글"마저도 자기들 글자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이 報道를 접한 韓國人의 衝擊은 매우 크다.

이 事件으로도 알 수 있다시피
中國은 모든 면에서 계속해서 "擴張政策"을 펴고 있다.
그것이 바로 "中國大國主義", 곧 "中華主義"이다.
자기 領土와 國民은 물론이고 歷史와 文化와 文字 등
모든 분야에서 자기 領域을 넓혀 나가자는 主義이다.
中國은 歷史的으로 보아도 그렇게 해서 점점 더 大國化해 왔다.
사실 中國의 현재 領土는
1세기 이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몽골과 티벳 등을 자기 領土로 編入함으로써 크게 擴張해 온 것이다.

한편 日本도 中國과 비슷하게 자기 勢力을 擴張해 왔다.
그것이 바로 日本帝國主義이다. 2차世界大戰의 敗北로
현재는 많이 잃었지만 한때는 "大東亞共榮圈"이라 하여
엄청난 領土 擴張을 꾀한 바 있다.
현재도 日本 영토는 韓半島의 10배에 이른다.
특히 日本은 모든 면에서 外國의 文物을 잘 받아들이는 特徵이 있다.
日本人은 그 받아들인 外國 文物에 조금의 創意力을 加味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다.
日本의 문자인 "假名(가나)"도 漢字를
變形시켜 자기 글자로 만든 것이다.

이에 반해 韓國은
正反對로 어리석게도 스스로 자기 힘을 弱化시키는
"縮小政策", "鎖國政策"을 펴 왔다.
1세기 전에 大阮君이 그렇게 해서 朝鮮을 亡하게 했다.
그런데도 오늘날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한글專用"이다.
한글專用"은 우리 文字를 擴張하고 豊富하게 하는
정책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 文字를 縮小하고
貧弱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그래서 우리 韓國語를 살찌우고 키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韓國語를 마르게 하고 低質化시켜서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政策이다.

中國은 "文字 擴張政策"을 펴서
남의 글자인 "한글"도 자기 글자라고 하여 자기 문자로 吸收한다.
이에 正反對로 韓國은 "文字 縮小政策"을 펴서
祖上 代代로 2千年簡 써왔던 우리 글자인
"漢字"마저도 엉뚱하게 남의 글자라고 스스로 내쫓고
내다버리고 있다.
자기 힘을 强하게 키우지 않고
도리어 스스로 자기 힘을 弱化시키는 인간이
제정신인가? 오늘날 韓國人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한글專用"을 옳다고 여기는 韓國人들은 精神異常者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韓國人은 語文政策에서 事理 分別을 제대로 못한다.
韓國人은 "한글"은 韓國의 "固有 글자"라고 엄청나게
자랑스레 떠들어 댄다.
그런데 세상에 文化民族치고 글자 없는 民族이 어디 있는가?
한글을 지나치게 자랑하는 韓國人들은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初等學生과 같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좋은 집 있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다.
우리만 집이 있는가? 웬만한 사람은 다 집 있다.
우리 집만 좋은가? 어느 사람들이나 자기 집은 다 좋다.

게다가 그렇게 자랑하는 현행 "한글"은 사실은 優秀한 글자도 아니다.
世界의 言語學者들이 稱讚하는 "優秀한 소리글자"는
世宗大王이 만든 "訓民正音"이지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엉터리 글자인 "한글"이 아니다.
한글은 "소리글자"기 때문에
胎生的으로 意味 傳達에 限界를 지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한글은 소리글자로서
韓國語 發音조차도 正確히 적지 못하는 劣等한 글자다.
그러니 "한글"을 자랑하는 일은
마치 不良食品을 天下名藥이라고 자랑하는 것과
똑같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韓國人들은 "한글"은 韓國의 "固有 글자"임을 강조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한글의 世界化"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큰 矛盾이다.
"한글"이 韓國의 "固有 글자"라면
"한글의 世界化"를 이룰 수 있겠는가?
"한글"을 韓國만의 寶物이라면서
또 그것을 世界로 普及하자는 것은 二律背反이다.
"한글의 世界化"를 바란다면 "한글"이
韓國의 固有 文字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곧 글자를 어느 한 民族만의 私的所有物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글의 國際化"를 이룰 수 있다.

世界 文字의 歷史를 보아도
文字는 어느 特定 民族의 所有物이라는 觀念 없이
여러 民族이 自然스럽게 共有하고 써왔다.
東洋에서는 "漢字"가, 西洋에서는 "로마자"가
代表的인 그러한 共有 文字였다.
文字는 그 本質上 어느 한 民族 次元을 넘어서는
巨大한 文明圈 次元의 創造物이자 共有物이다.
그렇기 때문에 大韓民國 국민처럼 文字를 어느 한
特定 民族만의 固有한 所有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文字의 本質을 모르는 큰 錯覺이다.

우리 스스로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그들의 글자로 나눠주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한글"은 찌아찌아족의 文字이기도 하지 않는가?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바라지 않았는가?
이런데도 "한글"이 "韓國만의 글자"인가?
우리 韓國人이 "한글"을
"韓國만의 글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한글"은 中國의 朝鮮族도 쓰고
美國의 美國 國籍을 지닌 韓人들도 쓰고 있는 國際 文字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한글"을
우리 韓國人만의 글자라고 所有權을 주장할 수 없다.
文字라는 것은 無償으로 누구나 주고받고 쓸 수 있는 知的 創案物이다.
다른 모든 知的 創造物은 創案權과 所有權을 認定받고 있으며,
남이 그것을 빌릴 때는 代價를 支拂해야 한다.
하지만 文字만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사실은 文字는 원래부터 主人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따라서 "漢字는 中國 글자"라고 말하는 것은
한마디로 자신이 無知蒙昧함을 暴露하는 것밖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한글은 韓國人만의 文字"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더욱 "한글의 世界化"를 이루려면
그런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한글의 國際 標準化"에 우리 韓國만이 權利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中國 안의 국민 일부라도 한글을 쓰고 있다면,
中國은 컴퓨터에서 한글 입력 방식의 國際 標準 制定에 나설
權利가 있다.
컴퓨터에서 한글 입력 방식의 國際 標準을 制定한다면, "한글"을 쓰는 모든 나라들이 모여서 議論하여 決定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김치"의 國際 標準 문제에 대해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日本이 "기무치"라는 이름으로
김치의 國際 標準化에 앞장 선 적이 있다.
그때서야 우리 政府가 부랴부랴 나서서 "김치"라는
이름으로 한국식 김치를 國際 標準으로 삼기 위해
고생한 적 있다.
그때 票決로 겨우 우리가 이기긴 했어도
하마터면 "기무치"에게 밀릴 뻔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김치"가 "韓國人만의 固有 飮食"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글"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國際化時代에 어떤 知的 創案物이
어느 特定한 民族의 所有物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런데도 "漢字가 中國 글자니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글專用"은
한마디로 無知蒙昧 그 자체이다.
"漢字"와 "로마자"는 長久한 歲月에 걸쳐서
이미 "人類의 共有 文字"로 자리잡았다.
이런 世界 普遍的인 文字를 어느 한 民族만의 글자라고 말하는 것은
眞理를 모르는 어리석음의 暴露다.
韓國人 대부분은 "한글은 韓國 것, 漢字는 中國 것"이라고
單純하게 區分짓는다. 정말로 單純無知하다.
한글도, 漢字도 어느 한 나라, 한 民族의 것이 아니다. "한글"이 "中國 文字"이기도 하고, "漢字"가 "韓國 文字"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眞理를 모르고 어리석은 韓國 政府는
"漢字"를 "中國 글자"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스스로 내쫓았다.
그런데 이제 中國이 "한글"을 "中國 글자"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한글"과 "漢字"는 둘 다 "中國 글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韓國은 이제 자기 글자는 하나도 없게 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韓國은 "漢字"는 스스로 내다버리고 "한글"은 中國에 빼앗겼다.
그렇다면 이제 韓國人은 자기 글자가 없는 국민이 되고 말았다.
韓國人은 글자를 어느 한 民族만의 所有物로
錯覺하기 �문에 지금 스스로 混亂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한글專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정책이 韓國人을 어리석게 만들어
지금의 困境에 빠뜨린 것이다.

지금까지는 "文字의 歷史"라는 觀點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았다.
다음으로는 "國際紛爭"이라는 觀點에서 이 문제를 살펴 보기로 하자.
中國이 한글이 자기 글자라고 우기면
우리도 맞불 작전을 놓는 게 가장 效果的이다.
곧 "漢字가 우리 글자"라고 나서야 한다.
마치 日本이 獨島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면
우리는 對馬島가 우리 땅이라고 맞불 작전을 놓듯 말이다.

우리는 漢字를 우리 글자라고 주장할 충분한 根據와 權利가 있다.
韓民族은 漢字를 2천년간 文字로 써왔고,
또 歷史를 漢字로 기록해 왔다.
그리고 우리 文化도 漢字를 바탕으로 創造해 왔다.
따라서 漢字가 우리 글자라고 주장할 根據는 차고 넘친다.
다만 우리에게는 커다란 걸림돌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한글專用"이다.
大韓民國 政府가 "國語基本法"이라는 법률로
"漢字"는 우리 글자가 아니라고 딱 못 박아 두었으니, 이제 와서 어떻게 우리가 "漢字"가 우리 글자라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우리 발등을 스스로 찍은 것이다.
세상에 자기 스스로 자기 손발을 묶는 이런 어리석은
民族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한글專用"은 너무나 큰 잘못이다.
우리 韓民族은 2천년 전부터 漢字를 받아들여 우리 文字로 써왔다.
이건 明白한 歷史的 事實이다.
이 歷史를 否定하거나 歪曲하려 해서는 안 된다.
漢字는 우리 韓民族의 글자로서 우리 韓民族의 知的 財産이다.
자기 財産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자기 財産을 스스로 버리는 자는 바보다.
국가가 强大國이 되려면 多文化를 받아들여 내 것을 만드는
包容力이 있어야 한다.
美國과 中國은 그런 包容力이 있어서 文化的으로 强大國이 되었다.
日本도 한국 못지않게 純血主義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漢字를 假名과 調和롭게 쓰는 정도의 融通性은 발휘한다.
오로지 韓國만 祖上 代代로 2천년간 써왔던 漢字를
남의 글자라는 理致에도 맞지 않는 엉뚱한 理由를
들어 스스로 내쫓는 狂亂의 짓거리를 벌이고 있다.
이건 偏狹해도 너무 偏狹하다.
精神的으로 閉鎖的인 수준이 거의 自閉兒 수준이다.
韓國 國民 전체가 精神病院에 들어가야 할 수준의 集團 狂氣다.

도대체 國際化時代, 多文化時代에
지구상에 왜 韓國人만이 이리도 時代에 逆行하여
옹졸하고 속좁은 民族이 되어 버렸을까?
이는 美國人 필립 제이슨이라는 外國 魔鬼에 들려서 자기 歷史와 言語와 文化 傳統을 否定하는 넋나간 인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外勢 追從主義者, 外勢 事大主義者들은 자기 民族을 背信하고 자기 民族의 傳統과 斷絶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窮極的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한글專用派들은 漢字를 버리고, 그 다음에는 한글을 버리고,
最終的으로 英語와 로마자를 쓰는 美國의 植民地 百姓이 되고자 한다.
한글專用派일수록 英語에 미쳐서
英語와 로마자를 마치 자기 말과 文字처럼 濫用하고
있는 現實이 그것을 證明하고 있다.
지구상에 이처럼 자기를 스스로 亡하게 하려고 미쳐 날뛰는 나라는 大韓民國이 唯一하다.

자 結論이다.
"한글"도, "漢字"도 우리 韓民族의 글자다.
다만 "우리 韓民族만의 글자"는 아니다.
온 人類가 共用으로 쓰는 文字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라도 "國語基本法"을 고쳐서
"漢字"도 "한글"과 함께 우리 글자라고 規定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大韓民國이 漢字를 우리 글자라고 주장하고
漢字의 國際 標準化 작업에 앞장 서야 한다.
우리는 그럴 權利가 있다.
현재 가장 傳統的인 漢字를 쓰는 나라는
바로 우리 大韓民國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한글專用法"과 "國語基本法"이라는
足鎖로 스스로 자기 손발을 묶고 있다.
"한글專用"은 國際化時代에 逆行하고자기 힘을 스스로 弱化시키는
閉鎖的이고 縮小的인 어리석은 政策이다.
이제 우리는 제정신을 차려야 한다.
슬기로운 국민이 되려면 迷夢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할것을 굳게 다짐 합니다.
 
 대한민국의 절대지상목표
 
국조단군의 건국이념 弘益人間 在世理化로
民主法治 正義國家 이룩하고 祖國統一 故土回復하여
世界平和 人類幸福을 달성하는 것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62 故 朴正熙 전 대통령 탄생비화
운영자 12-26 0 529
운영자 12-26 0 529
61 단군朝鮮과 동북공정 역사 논쟁
운영자 11-14 0 600
운영자 11-14 0 600
60 法의 본뜻과 정치의 길
운영자 11-14 0 533
운영자 11-14 0 533
59 「我愛日日新之大韓民國」
운영자 11-14 0 511
운영자 11-14 0 511
58 《동아시아 문명의 시원은 고조선》
운영자 11-14 0 635
운영자 11-14 0 635
57 유물로 나타나는 단군(單鯀)조선(朝鮮)(유트브로 보기)
운영자 02-21 0 787
운영자 02-21 0 787
56 청신을 차리자.
운영자 02-09 0 753
운영자 02-09 0 753
55 『제안문』
운영자 10-24 0 973
운영자 10-24 0 973
54 '배달朝鮮민족' 겨례님들께
운영자 09-17 0 1463
운영자 09-17 0 1463
53 인공 지능‘AI’의 대화 -단군은 곤입니다-
운영자 09-06 0 1230
운영자 09-06 0 1230
52 단군(鯀)조선(朝鮮)의 선(鮮)字는 언제부터이고 누구인가?
운영자 07-03 1 1145
운영자 07-03 1 1145
51 고대조선(古代朝鮮)은 언제 누구서 부터인가?
운영자 06-20 0 1067
운영자 06-20 0 1067
50 단군‘곤(鯀)’의 명칭
운영자 06-14 0 1014
운영자 06-14 0 1014
49 단군(鯀=gun)의 명칭은 관직(官職)인 ‘대감(大監)’의 …
운영자 06-10 0 1138
운영자 06-10 0 1138
48 단군 곤(鯀:gǔn)이 환(鰥)이고, 환(鰥) 은 칸(…
운영자 05-18 0 1343
운영자 05-18 0 1343
47 최초의 아비‘父’字가 나오는 동기(제2강)
운영자 02-12 0 1138
운영자 02-12 0 1138
46 최초의 아비‘父’字가 나오는 동기
운영자 02-04 0 1184
운영자 02-04 0 1184
45 東方 民族의 역사에는 ‘배달朝鮮’과 ‘단군朝鮮’이 바로 古朝…
운영자 01-21 0 1263
운영자 01-21 0 1263
44 동방인(東方人)의 뿌리
운영자 10-17 0 1321
운영자 10-17 0 1321
43 단군조선(單鯀朝鮮)의 12州 와 기독교의 12支派
운영자 09-24 0 1337
운영자 09-24 0 1337
42 단군朝鮮과 鮮卑族과의 관계
운영자 09-14 0 1352
운영자 09-14 0 1352
41 8월달을 ‘인류 화합의 달‘로 정할 것을 제안.
운영자 08-19 0 1386
운영자 08-19 0 1386
40 심각한 혼돈의 시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운영자 02-28 0 1571
운영자 02-28 0 1571
39 동방의 등불이 켜지는 날!
운영자 04-08 0 5829
운영자 04-08 0 5829
38 홍씨가 탄생한지역
운영자 02-17 0 6026
운영자 02-17 0 6026
37 좋은 생각
운영자 12-30 0 5567
운영자 12-30 0 5567
36 이것도 수정을 해드렸습니다.
무위 05-19 0 5230
무위 05-19 0 5230
35 여기도 수정하셔야 할 건데요.
무위 05-19 0 5574
무위 05-19 0 5574
34 네이버 사이트 수정완료 1
무위 05-19 0 5598
무위 05-19 0 5598
33 본 단체회원으로 가입하시고자하는 분들을 위해 회원가입서를 올… 2
운영자 04-29 0 5030
운영자 04-29 0 5030
32 단체명칭과 정관과 정면 배달의 'BIMK'를 'BJMK…
운영자 04-29 0 4387
운영자 04-29 0 4387
31 국조 (國祖)와 조국(祖國)
운영자 12-17 0 4052
운영자 12-17 0 4052
30 금문속의 상고 시대 삼황오제(三皇五帝)와 단군
운영자 10-06 0 5642
운영자 10-06 0 5642
29 한민족역사 1만년설과 단군기원설
운영자 07-25 0 4905
운영자 07-25 0 4905
28 삼국유사의 재 해석
운영자 05-17 0 4344
운영자 05-17 0 4344
27 잘못 알려지고 있는 상고사(2)
운영자 05-01 0 4755
운영자 05-01 0 4755
26 잘못 알려지고 있는 상고사(1)
운영자 05-01 0 4490
운영자 05-01 0 4490
25 종묘사직 제례행사에 대하여
운영자 03-22 0 4398
운영자 03-22 0 4398
24 東方의 뿌리는 古朝鮮으로부터 저자 강연회
운영자 01-18 0 4936
운영자 01-18 0 4936
23 東方의 뿌리는 古朝鮮으로 부터 (출판소식)
운영자 12-30 0 4390
운영자 12-30 0 4390
 1  2  맨끝
단군朝鮮연구회 소개 이용약관 개인 정보 취급방침 책임의 한계와 법적고지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사이트맵

찾아오시는 길

Copyright ⓒ 2012 단군朝鮮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주소 : 서울 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353-1 서교타워 7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