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사직제례(宗廟社稷祭禮)행사에 대하여
종묘사직제례(宗廟社稷祭禮)행사는 고대 조선 역사단계 시대와 관련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선대조(先代祖)들은 예로부터 자연의 이치를 터득, 그 자연에서 불러지는 명칭을 자손들에게 명명(命名)하였고, 자손들에게는 예(禮)를 가르쳐 조상들에게 제(祭)를 올려 조상을 섬기게 하였던 일들을 청동기(靑銅器)에 주조(鑄造) 명문(靑銅器名文)으로 남겨(무덤)놓았던 것이기에 그 자료를 기준으로 밝혀지고 있다. 즉 조관철새들이 제일먼저 봄에 날아오는 것을보고 농사를 짓고 자연변화를 보면서 역법도 알아내고, 날아다니는 새를 가지고 계절을 말하였다.
여자들이 누에치고 아이 낳는 것을 보며 이 모든 것을 자연에서 발견한다.
구름, 불, 물, 용 등을 관직의 명칭으로 지었고, 동물을 족(族)씨로 새를 관명(冠名)의 이름으로 하였기 때문에 그 후예들은 그것을 족칭(族稱)으로 삼았다.
고대조선의 역사단계에서 제례의 시작은 역사를 만든 삼신례(參神禮)로 부터 시작 된다.
삼신에 의해 人文이 개벽 되었고, 三神의禮가 人道의 시작이고, 사람을 바르게 태어나게 하기 때문에 ‘점지’해 주는 신으로 모시는 것으로 土神, 稷神이 천신을 함께 모시고 사는 집(集)으로 상형문자로도 형성되고 ‘祭’字도 형성된다.
사직신(社稷神:柱山氏) : 농사일을 맡은 벼슬자리이며, 하늘의 일을 관장하는 신(神:司理天事)으로 주(柱)씨의 씨칭(氏稱)이며 풍년제(豊年祭)를 받는 신이며, 한 해 동안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帝王들이 매년 한차례 남정중(南正重:社稷神)을 사천(司天)의 神으로 봉하여 매년5월에 공제(公祭)로 받들어 지냈던 것이다.
중국 하(夏)나라 이전부터 역대 帝王들에 의해 풍년제를 받은 사직(社稷)신이다.
삼신례(參神禮) : 역사를 만든 삼신에게 제(祭)를 제일 먼저지내고 그분들의 뜻을 따라 잔을
3번 올린다.
례(禮) : 성규율(性規律)과 사회규율(社會規律)로서 性의 규율을 찾아 아버지에게 배운다.
종묘(宗廟) : 종묘는 古代 朝鮮의‘朝’字가 나오면서 종'묘(廟)字'가 나온다.
현재의 종묘제례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다.
종묘제례는 중요 무형문제로서 제56호로 등재 되어있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 되었다.
사직단(社稷壇)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 천도시 경복궁 왼쪽은 종묘, 오른쪽은 사직을 조성하였는데 중국의 본을 따랐다 한다.
조선시대는 명맥이 끊어졌다가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부활된 셈이라고, 일제강점기에 망가졌다가 공원으로 하면서 수영장과 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문제점 제기 : 하늘과 땅에, 그리고 곡신(穀神)에게 제를 올려, 나라의 국운안녕과, 민생들이먹고 사는 풍작을 기원하는 사직단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 천도시 사직단을 세웠다 하여 李氏家 의 전용물인양 생각하면 큰 착오라 할 수 있다.
백성이 없는 나라는 있을 수 없고, 백성이 없는 왕이 존재 할 수 있겠는가?
태조 이성계가 혼자 잘 되자고 사직단을 세우지는 않았을 터, 사직단은 위에서 밝혔듯이
‘사직(社稷)’이라는 의미를 깊이 새겨야 될 것이며,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매우 신성시해야 될 장소가 현재로는 모든 여건이 어지럽혀 지고 있는 상황에 있기에 국민모두의 관심과 정성이 담겨져야 된다고 본다.
고대조선 역사단계(약4700년전)에서부터 행하였던 일을, 약 500여년 전에 태조 이성계의‘李氏家’에 의해 세워졌으니 ‘李氏家’에서만 사직제례행사(社稷祭禮行祀)를 지내야 된다는 것은 다른 모든 성씨들의 무력함과,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는 나라의 무관심이라 할 수 있겠다.
2012년 3월 29일(목)홍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