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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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卷第ㅡ 2. 古朝鮮(王儉朝鮮)
魏書云, 乃往二天年 載有壇¹⁾檀君王儉立都阿斯達(經云無 葉山)開國號 朝鮮 與高²⁾同時 .....熊女者無與爲婚 故每 於壇樹下...중략
孕生子號曰壇君王儉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都平壤城<今西京>始稱朝鮮................중략
ʻ與ʼ자의 풀이 : ① 줄여 ② 참여할 여, 더불어 같이 할 여, 참여여,
金文新考 譯字인 홍천표씨와 김제섭씨의 상원갑자 연대표로 살펴본다면,
지금까지의 해석은 오판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새로이 밝힌다면 ‘開國號 朝鮮 與’高 同時’를 ‘조선나라가 열린 것은 堯와 더불어 같은 때’로 ‘唐堯時代’에 열린 것으로 착각을 하였던 관계로 역사를 찾지 못하게 된 안타까운 일이 되어 버렸다.
참고하여보면
三國遺事 卷 第 1. 2. 古朝鮮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都平壤城始稱 朝鮮.........
以唐高卽位五十年에서...
B.C 3,371년이 되는 庚寅年은 古代朝鮮의 第4代 帝王이였던 帝嚳 高辛氏 즉위 五十年이 되는 해로 나이는 80세가 되고 高辛氏가 붕어(崩御)하기(55년:乙未궤)5年 전의 일이다.
帝堯는 B.C 2,377년 甲申年에 태어나(帝王世紀) B.C 2,357년 甲辰年에 즉위(帝王世紀)하여 B.C 2321 庚辰年 38년간 즉위에 있다가, B.C 2,320년 辛巳年 帝舜 즉위 1년에 붕어 하였다고 되어 있다.
帝堯는 50년 동안 帝位 자리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 참고: 朝鮮 與高²⁾同時를 대부분 唐堯時代로 보았기 때문에 歷史書에
오류를 범하는 일이 있었다.
위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역사서에는 高辛氏가 대부분 빠져있거나 기재되어 있지 않다.
‘與高 同時’에서‘與高’는‘高唐堯’가 아니고 帝嚳高辛氏와 같은 때를 가르키는 것이다.
물론 堯도 같은 시대라 할 수는 있으나 청동기 金文속에서 밝혀지는 연대로는 맞지 않으며 주로 帝嚳高辛氏시대에 '鯀'이 가장 활약이 많았고 帝摯가 堯에 의해 정벌당하며, 끝나는 시점에서' 鯀'은 大監의 직책에서 그 직책을 내려 놓아야 되는 자격상실을 하였던 것이므로 끝났다고 보아야 될 것이다.
물론 堯가 '鯀'을 崇佰으로 모시기는 하였으나 그러면서도 벌을 준다.
朝鮮의 ‘朝’字는 顓頊고양씨 때 성립이 되고 ‘鮮’字는 高辛氏때 생겨나기 때문에 '朝鮮'과 '堯'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
-東方의뿌리는 古朝鮮으로부터-책속에서
2013년 5월 17일(금) 홍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