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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등불이 켜지는 날!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15-04-08 (수) 09:48 조회 : 2550

동방의 등불이 밝혀지는 날

동방(東方)의 나라! 그 뿌리를 지니고 있는 아시아인들, 그 중에서도 조선(朝鮮)이라는 명칭으로 인류최초의 나라가 성립되어 국가형태를 이루어낸 배달민족의 동방예의지국으로 종묘사직(宗廟社稷)과 경천외인숭조사상(敬天偎人崇祖思想)인 홍익이념으로 남을 이롭게 하고 화합하면서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여 사랑하고 아낄 줄 알았던 선조님들이 계셨다.

아득하기만 한 먼 옛날의 이야기들,

다행히도 현명하신 선조님들은 당시의 생활사의 기록을 청동기명문에 새기어 인류역사상 최고의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던 시대였음을 알려줌으로써 5,000 여년동안 묻혀 있었던 귀중한 보물들이 이 시대에 훌륭하신 선조님들의 발자취를 가름할 수 있는 크나큰 복을 안겨주셨으니, 생각하건대 지금우리가 바로보고 바로 인식하여 뒤따라오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영광된 역사의 흐름을 궁극적인 목표로 안겨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국혼이 서려있는 영토의 지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경이 되었지만, 그 시대의생활사 기록은 그 민족의 등기부등본과도 같은 것이다.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20세기까지도 밝히지를 못하였던 고조선(古朝鮮)의 실체, 그리고 고조선(古朝鮮)과 더불어 국조(國祖)인 단군(檀君)의 실체에 대하여 과거 몇 천년을 거듭하여 허공의 메아리 되어 울림으로 거듭되었던사실들...

생각하건대 반만년동안 감추어진 보물급들이 생생히 들어남으로 동방의 등불이 밝혀질 지금에 와 있음을 생각하여 본다.

일부 동방의 뿌리를 찾고 있는 사학자들은 한민족의 역사가 1만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고조선의(古朝鮮)의 강역도 찾지 못하고 있다.

고조선(古朝鮮)의 ‘조(朝)’자는 당시 대표적인 인물들의 명칭이 들어 있는 천지인(天·地·人)이 함축된 자이며, ‘朝’자의 상형문자는 인류최초의 국가단계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자(字)이다.

조선(朝鮮)의 ‘선(鮮)’자는 ‘조(朝)’자가 형성되고 약 120년~130년경 후에 역시 사람의 씨칭(氏稱)으로부터 이루어진 문자로 청동기 명문을 익히지 않고서는 가려낼 수가 없다고 본다.

설사 청동기명문(靑銅器銘文)을 익힌다 한들 바로 보지 못하면 조선(朝鮮)이 없다고 하거나 단군(檀君)의 실체가 없다고 판단을 내려, 인류 최초의 국가단계 역사문명에서 최고의 문명의 꽃을 피웠던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워버려 후손들에게 다시는 씻을 수 없는 오류를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한민족의 역사가 1만년으로 추정하는 이들에게 묻고자한다면, 세계4대문명의 발상지(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 중국황하문명서)가 탄생하기 이전서부터 대문구문화, 서후도(200만년~180만년),등 1백 만년전의 신석기시대부터 조상들은 불(불씨항아리)을 사용하였고, 원모인, 녹풍원인, 정촌인(丁村人:21~8만년)등의 인류들은 누구들의 조상인지를 밝혀내야 될 것이다.

이 지역은 지난 2014년 10월 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필자가 고조선(古朝鮮)의 강역과 화폐에 대하여 중국의 중원지역에서의 활동범위를 밝힌바와 같이, 그 당시에는 기후가 온난 다습하고 넓은 초원과 무성한 밀림의 지역으로 원시 인류들이 생활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기후로 되어있었다는 점이다.

이 일대는 중국의 현재 지명으로 남아있는 산동곡부에서 상구, 정주, 서안, 돈황(敦煌)까지의 중원일대이며, 당시의 생활도구인 농업과 목축과 수산업에 필요한 도구들이 발달되었고, 약1만8천 년 전에는 바다에 물이 없었던 시대로 현 대한민국의 지역에서도 볍씨의 시조가 중국의 중원일대보다도 더 먼저라는 학설이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동방인의 문명(각화문자)시원지는 반파문화(앙소문화전기)와 앙소문화(8000~6000년)이며, 이 사람들은 동쪽의 산동지역과, 남쪽의 장강유역의 사람들과의 밀접한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지도그림으로는 거대한 삼각형구도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앙소문화지역이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중원지역의 대문구문화, 남쪽에는 대계문화와 북쪽에는 홍산문화가 있다.

앙소에서부터 동쪽의 산동지역인 곡부 일대에서 ‘조(朝)’자가 성립되나 그 시대의 ‘朝’자의 상형문자는 현재 쓰고 있는 ‘朝’자와는 다르다.

고조선(古朝鮮)의 ‘朝’자와 ‘鮮’자는 춘추시대서부터 연구를 많이 하였던 것으로 지금까지도 관심 있는 나라에서는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선(鮮)’자는 삼황오제시대에 중국 헌원황제의 손자가 되는 제곡고신씨(帝嚳高辛)시대 산동곡부(山東曲阜)근교에서 단군(본명칭:GUN:单鯀)에 의해서 선(鮮)씨가 나오게 된다.

청동기명문으로 밝혀지는 동방의 역사단계는 삼황오제시대 부터 시작된다.

특히 고조선(古朝鮮)의 역사단계는 더욱 그러하다.

곤(鯀)은 삼황오제 시대의 제사장으로서 역사기록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대단한 활약을 하였던 인물이며, 손자인 제지(帝摯)시대에는 9년간의 형벌(치화시대)을 다스리는 대감(大監)직책의 감투를 맡는다.

감옥(監獄)의 ‘감(監)’자는 이때부터 나타난다.

곤(鯀)이 세운 나라는 헌원황제의 손자 요(堯)임금이 존칭으로 붙여준 숭백(崇伯)의 이름을 따서 숭국(崇國)이라는 즉 동방예의지국의 나라다.

숭국(崇國)은 인류들의 국가단계에서 최초로 세워진 나라로 나타나며, 곤(鯀)사망 후 후대에는 상(은)나라에 속국이 되어 상나라 사람들은 이 터에 그들에 의한 건축이 들어선 것으로 되어있다.

삼황오제시대의 12주는 순(舜)임금이 요(堯)임금을 대신 섭정시에 곤이 사망 하는 깃 점으로(갑자년 B.C.2,337년)왕권이 바뀌니 이를 반대하는 삼한(마한, 변한, 진한,)이 갈려 지면서 황제의 증손이 되는 우임금에 의해 9주로 된다.

생각하여 보건데 인류최고의 생활지였던 무대가 중원지역이었으나 당시의 왕권의 내란으로 동방의 후손들은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가 정착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본다.

고조선(古朝鮮)의 명칭은 사람의 씨칭(氏稱),명칭(名稱)으로 뭉쳐진 문자이므로 지명으로 찾으면 나타나 있지 않다.

대부분 역사사료들은 진한(秦·漢)시대에 거의 전부를 중국의 헌원황제 위주로 틀이 바뀌어져있어 바로 된 역사를 접하지 못하고 있지만, 진한시대 이전의 사료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밝혀진 사료로 본다면 고조선의 마지막 제왕(帝王)이었던 백익(伯益)이 지었다는 산해경속의 해내경에 조선(朝鮮)의 명칭이 나오는데, ‘동해의 안쪽 발해의 모퉁이’를 못 찾고 있는 실정이다.

좀 더 심도 있게 접근을 하여야 되겠지만 산동곡부 부근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朝鮮)은 어느 나라의 후예도 아니다. ‘朝’자가 성립될 당시는 국가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이고 씨족의 형태였고 ‘주(州)’로 되었기 때문이다.

‘배달’이라는 상형문자는 제례(祭禮)를 위한 행위로 이루어지는 상형문자이기에

‘朝’자가 성립되면서 ‘배달’의 상형문자가 나오며, 단군(곤(鲧:鮮씨):gǔn중국발음)이 세운 숭국(崇國)은 ‘朝’자와 ‘鮮’자가 형성된 다음이다.

다음은 순(舜)임금이 단군(鯀)을 처형시키는 내용이 중국 락빈기 저자의 금문신고 청동기 명문에서 밝혀진다.

재(在)《史记》中,신위(身为)

正月上日()수종우문조(受終于文祖)(帝堯)...(금문신고 典籍集 兵銘集p.80)

류공공우유주(流共工于幽洲),방(放)환두우숭산(驩兜于崇山),찬(竄)삼묘우삼위(三苗于三危),극곤우우산(殛鯀于羽山),사죄(四罪),이천하(而天下)함복(咸服).’

해설

정월 1일에 순(舜)은 제요(帝堯)의 끝마친 제위(帝位)를 이어받고 종묘(宗廟)에 고 하였다.

공공을 유주에 귀양 보내고 환두를 숭산에 가두고, 삼묘를 삼위로 쫒아버리고 곤을 우산에서 죽게 하였다. 네 죄인을 이렇게 다스리자, 천하가 다 복종하였다..(금문신고 典籍集 兵銘集p.80)

2015년 3월 25일 (수)

(사)단군朝鮮연구회 이시장 홍혜수

www.idang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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