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朝鮮의 眞意와 實體를 밝히다.”의
기조연설
우리는 우리의 韓民族史를 어디까지를 암혹의 나라 神話傳說로 만 지켜보며 갈 것인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千說萬說로 우리의 현실은 막연하기만 합니다.
각계각층의 목소리로 한민족의 기원설이 기원 전 BC 250만 년 전부터 60만여년, 1만여년, 9천여년. 7천여년, 5천여년 등 다양 하게 연대수를 내어 놓고 있어, 어쩌면 우리가 우리를 歪曲시 키고 있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1206년에 태어난 三國遺事 저자이신 일연(김경명) 스님에 대해 지난 2월(2006)2일부터 3월 24일까지 1개월간 서울 역사박물관 에서 일연스님 탄생 800주년기념으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三國遺事”(저자 고운기) 특별전을 열어 상설전시장과 강의에 참 석한 바 있습니다.
國祖 檀君이 실물이니, 아니니 하는 시비가 끊이지 않아 그 시 대를 살아보지 못했던 저로서는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였습니다. 고운기교수님께 질문한 몇 가지 중에,
가. 당시 지식인이었고, 나라 국사였던 일연스님이 8세부터 절 과 인연이 되어서, 14세에계 를 받으시고, 여러 절을 오고 가면서 口碑傳承으로 전설의 이야기를 모아서 70세가 넘 어 三國遺事를 집필하게 되었다는 점.
나. ‘魏書’에 이르기를............ 에서 ‘魏書’에 대해서는 학자들도 찾지를 못하였다는 점.
다. 삼국유사보다 약150년 전에 삼국사기가 나왔으나 왕을 중심 으로 권위적으로 저술이 되었다는데 반해 삼국유사는 민족 의 고난을 극복하는 모체로 당시 최씨 무인 정권이 들어서면 서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민족의 자존 심을 갖고 실화로서 상징하여 잘난 사람이 아닌, 보통사람들 의 이야기를 모아 집필하였다는 점과.
라. 600여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삼국유사가 잠잠히 있었는데, 20 세기에 들어서면서 제 역할을 하게 되어 학자들 간에 지난 100여 년 동안 2.000여 건의 논문과 저서가 삼국유사를 바탕 으로 연구한 결과물로서 학계에 제출 되었다는 점과 문학, 어 학, 사상, 종교, 민속, 고고학, 미술, 음악, 인문학계 전 영역에 미쳤다는 점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魏(위나라 위자)書”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朝鮮을 開國한 國祖檀君은 누구였나?하는 궁금증이 풀리 지 않았으나,香林子 선생님을 만나 대화하면서 풀리기 시작하였 습니다.
人類의 始原地를 따지자면 끝도 없이 많은 날들을 지새워야 되겠 지만 나라가 형성된 시점, 글자를 만들고, 화폐를 만들고, 연장을 만들어 씨 뿌리고 농사짓는 법과, 일상생활에 쓰이는 생필품을 사 고파는 시장을 만들고, 백성들에게는 햇곡식으로 “天神祭”를 지내 는 法과, 백 가지 초목을 뜯어 사람이 병이 나면 고칠 수 있는 방 법을 터득 하게 하여 후대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컸으나, 뒤바뀐 역사의 歪曲으로 말미아 몇 천 년 동안 멸시와 경멸로 설움을 받 은 그분께 어디서부터 반성하고 석고대죄를 해야 좋을지 암담하 기만 할 따름입니다.
香林子 선생님과 대화 중에서 “朝‘자와 ”鮮“자가 형성되기까지에 는 약150여년이 된다 하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밝혀내야 될 듯싶 습니다.
“人類史”도 세계에 많은 학자들 간에 연구가 되고 있지만 “韓民族史”도 많은 疑懼心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 통일신라 농민의 아들 솔거가 꿈에 “神筆”을 받아 단군상을 천여 점이나 그리면서 마늘잎 과 쑥 잎은 무엇을 뜻하며 그린 것일까?
2. 어째서 삼국유사는 600여 년 동안 잠잠히 있었을까?
3. 삼국유사에 나오는 웅녀는 누구인가?
4. ‘檀君’의 ‘檀’자와 ‘君’자의 형성된 시기와 그리고 언제부터 ‘ 檀’자를 사용하게 되었는가?
5. 고대인들은 왜 ‘소’를 대지에 사는 생명으로 삼았으며, 고대
세계대부분의 문화에 그려져 있는지?
6. 고대 三韓 중, 弁韓 사람들이 썼다는 고깔모자는 왜 지금 우 리가 사용하고 있는지?
7. 文武王 비문에 나오는 신라선조들의 ‘火官之后’들은 누구인 지?
8. 불교의 서방 극락정토 주존이신 “한량없는 빛의 뜻” 아미타 부처님은 누구인지? 그 분이 세계를 관장하는 16가지 방법 은 무엇인지?
9. 경주 전철리 암벽화에 “牛(소)”를 낳은 여신상에 ㅇ,ㅁ,ㅅ은 왜 그려져 있는지?
10. 三神을 받들어 화합한다는 뜻은 어느 시기부터 나왔는지?
이러한 의문점들이 그 시대에 살았던 생활의 현실이 우리와는 너무 멀기에, 그러면서도 우리는 찾아야 되겠기에 이 시대에 사 는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맞대어 머리를 모아 의견 을 좁혀 밝 혀내서 우리 후세들에게는 더 이상의 혼돈의 시대를 접하지 않 도록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古 金文에 의거 考證 할 수 있는 계기가되었음을, 先烈님들께 감사를 올리며 이 나라先祖들이 현 명하신 지혜로 판단하여 형성된 문자들의 뜻을 깊이 새겨야 되 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자기주장만을 내세워서 考證없이 각양각색의 막연한‘我田引水’ 격의 생각만 고집 하는 것은 버려야 할 때가 아닌 가 싶습니다.
‘韓國人’이니, ‘朝鮮人‘이니 하는 이름을 우리는 끈질기게도 버리 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三一獨立 만세를 불러 이 국토를 지키려 했음도, 결국 우리의‘朝 鮮’이라는 나라를 지킴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생각에서 거듭나야 되겠습니다.
지난 2005년 10월 28일 용산 중앙 歷史博物館 開館식 때 ‘古朝鮮’ 이란 名稱을 올리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透明과 眞實로써 民族의 精氣를 바로잡고 정의로운 社會 秩序를 만들어 이 나라 傳統과 민족의 正體性을 확립하여 자라나 는 우리 후손들에게 차원 높은 가치관에 혼선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각계각층에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이 바로서는 그리고 재정비하는 사회질서를 만들어 가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2개월에 한 번 정도의 발표와 세계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考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며, 여러분들의 많은 협조와 동 참이 있어 주시기를 기원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알아 정립하게 된다면, 남북한의 장벽 도 없어질 것이고, 세계를 안을 수 있는 계기도 된다고 봅니다. 세계화시대에 우리 것을 모르고 뒤로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현시대 상황으로는 제일 시급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이 민족의 미래를 건 최후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들 하십시오.
2006년 6월 19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 홍혜수
※자비를 들여서, 향림자 선생님의 수고로 강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고대조선의 실체
를 알리는 작업을 시도하여 보려 하였는데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