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方人의 뿌리 역사인‘古朝鮮史’역사 자료와
‘朝鮮’강역고증에 대한 심각성
애국애족의 뜻을 지닌 지인들의 뿌리역사에 대한 연구는 하늘이 감동하리만큼 그 열의가 대단함을 인식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대부분의 연구진들은 아직까지 그 핵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역사가 무엇이 관대?’로 유명한 말을 남긴 단재 신채호님도 중국 산동곡부까지만 운운 하고 찾지를 못하였고, 이병도님도 단군朝鮮에 대한 연구를 심도 있게 다루었으나 밝혀내지를 못하였다.
2016년도 현재를 살펴보면 민족의 뿌리역사에 대한 연구가 막바지에 이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현재의 심각성은 내부끼리의 갈등이다. 모두의 주장이다.
古朝鮮의 강역과 수도를 밝히는 일이다.
일부는 이북을 중심으로 백두산을 깃 점으로 하여 古朝鮮의 神市가 열렸다 하고, 일부에서는 만주 벌판을 휘감아 알타이산맥으로부터 바이칼 호수에서 시작이 되었다하며, 일부에서는 홍산문화와 요서·요동·요하를 깃 점으로 조양(朝陽)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들이다.
또한 연나라 당시의 요서·요동지역은 연나라가 古朝鮮을 빼앗은 지역으로, 하북성의 발해만을 끼고 현재의 북경과 천진, 남쪽 일대에 펼쳐져 동으로 천진을 포함 서쪽으로 보정시, 수성진과 백적산 까지 이르는 지역, ‘朝河’ ‘朝鮮河’이것이 古朝鮮의 강역이라고 주장을 한다.
더욱이 한사군과 낙랑군이 古朝鮮과의 연관성에 대하여 치열하게 토론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주장들이 나오게 되는 동기는, 춘추시대로부터 秦·漢시대를 거쳐 淸나라 元나라 등에서 행정구역을 없앴거나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선은 위에서 밝혀지는 지역으로는 고대朝鮮의 발상지를 찾을 수 없다고 본다.
고대朝鮮의 국가단계는 중원지역 홍수의 난리가 되었을 때 세워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고, 북위 40도위인 백두산이나 바이칼호수 등은 그 당시 빙하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홍산문화나 조양등은 중원지역 앙소문화보다 약간 뒤의 문화로, 생활터전으로 인구가 이동한 것으로는 볼 수 있으나 고대朝鮮국가단계발상지로 인정하는 것은 미 홉 한 점이 있다.
이 모든 것을 고증하는 방법으로는 그 당시 생활사를 기록하여 땅속에 묻어놓은 청동기 명문을 통하여 밝혀내는 도리밖에 없다고 본다.
많은 연구진들의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
2016년, 8월, 6일 (금)
(사)단군朝鮮연구회 이사장 홍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