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안호상 박사님의 개천절 관련 참회 발언에 대한 증언기록
단군기원 4328년 (1995 년) 5 월 25 일,
서울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 912호실에서는 안호상(1902.2.8~ 1999.3.15) 초대 문교부장관(1948.8.15~ 1950.3.21)을 강연자로 모시고, 전국의 민족운동 지도자 및 관계자들이 회의를 마친 후 강당에서 약 100여 명이 식사를 위해 안 박사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안 박사님께서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시려던 순간, 갑자기 쓰러져 졸도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현장에는 민족계의 유력 인사들이 다수 있었으나, 적절한 응급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하던 중 김해 거주 도인감별사로 알려진 배정강 보살이 손영언 법사에게 아침일찍 전화를 걸어 와 “오늘 서울 수운회관에 큰 행사가 있으니 반드시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강권하였고, 이 말을 전해듣고 곧바로 KTX를 타고 상경하였던 손 법사가 바로 안 박사님 맞은편에 앉게 되었다.
이후 손 법사가 배워두었던 인공호흡 등 응급조치를 시행하자, 안 박사님께서 서서히 의식을 회복하셨다.
정신을 가다듬고 물 한 모금을 드신 뒤, 박사님은 깊은 한숨과 함께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민족 앞에 대역죄를 지은 장본인이다.
또한 6·25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 제공을 내가 했다.
그 연유를 오늘 이 자리에서 고백하고자 한다.
문교부 장관 재직 시절, 경무대를 방문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께서 묻지도 않으셨는데
내가 일부러 ‘우리의 개천절이 음력으로 되어 해마다 날짜가 달라진다’는 문제를 말씀드렸다.
그러자 대통령께서 ‘그럼 양력으로 하면 될 것 아니냐’고 즉답하셨고, 그 한마디 이후 음력 개천절이 양력으로 변경되었다.(1949.10.1일 제정,1949. 10.3일부터 시행) 이어서 양력개천절로 변경되고 나서 집안사람인 육군소위 안두희가 김 구선생을 저격하여 돌아가시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그것이 우리 고유의 천제(天祭) 전통을 훼손하는 일임을 뒤늦게 깨닫고, 깊이 뉘우치고 있다.”
박사님은 이 말씀을 마치며 눈시울을 적셨고,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 민족의 근본정신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이 사실을 30여 년이 지난 오늘 다시 기록함은, 그날의 참된 뜻을 후세에 전하고,
고인이 되신 안호상 박사님께서 진정으로 편히 영면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손영언 법사의 구술을 정리함.
단군기원 4358 년 (2025년) 10 월 25 일
(사) 단군朝鮮연구회
이사장 成功ㅣ金唱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