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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수정안

운영자 2012-01-20 (금) 09:12 14년전 4927
 
 
교과서수정안
 
초등학교 : 4,5,6 학년 사회
중 학 교 : 사회
고등학교 : 사회
 
1.초등학교
사회4-2(p.6,7),중학교 국사(p.17),고등학교 국사 (p.33)에 실린 나라에서 지정된 국조의 두 존영 화상에 대하여
 
한민족(韓民族)의 국조(國祖)로 모셔지고 있는 신화전설주인공(神話傳說主人公)인 단군존영(檀君尊影)은 이남에서만 두 존영으로 모셔진 것으로 알고 있다.
 


 
 
 
 
 
 
 
 
 
 
 
 
 
 
 
 
 
1)통일신라시대의 화가 솔거(率居)에 의해서 그려진 풀잎 옷을 입은 존영(尊影)2)1970년대 홍익대학교 홍석창 교수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현재 현정회(顯正會)가 모셔놓고, 교과서에 등재 된 노란 옷에 리본을 맨 모습
 
1)의 솔거의 그림은(작자미상) 동사(東史)유고에 의하면,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솔거가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스승이 없고 가난하여 그림을 그리기를 원하면서 천신(天神)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던바 단군이라는 분이 나타나 신필(神筆)을 주어 그것으로 꿈에 본 단군의 화상을 천(1,000)여 폭이나 그렸던 그림으로 전하여지고 있었다.
 
고려시대 문인 이 규보(1168-1241)에 의하면 신라시대에는 솔거의 단군화상을 가가호마다 걸어놓았었다고 대종교 김 문겸 선도사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솔거의 꿈에 마늘잎과 쑥 잎의 옷을 입고 나타난 단군이 어째서 약초가 될 수 있는 옷을 입고 나타났으며 솔거에게 신필(神筆)을 주어 단군의 화상을 그리게 된 동기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될 것이다.
 
솔거의 그림은 잘 알려진 황룡사의 벽 <노송도>, 분황사의<관음보살도> 등이 전해지고 있다.
솔거의 그림 단군존영의 풀잎 옷은 윗부분 옷에는 마늘잎이고,하단부분에는 쑥 잎으로 되어 있다.
반만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리는 이 시대에도 마늘과 쑥이 질병인 암 예방에 특효로 알려지고 있는 것으로, 경기도 강화 쑥과 의성 단양 마늘 등은 세계에서도 잘 알려진 으뜸가는 자양식품이다.
 
솔거그림 단군화상은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에 우리 국민 대다수의 인식에 인지된 모습이다.
솔거가 그린 국조(國祖)로 여기는 단군진영을 똑같이 그려 진 것은 세계천진보존으로 부여군에 모셔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의 노란 옷 에 리본을 맨 존영은 현재 사직동에 있는 현정회가 모셔놓고 있는 것으로, 현정회는 한국 고유한 전통에 따라, 한국인의주체성을 되찾고, 민족정기와 기백을 구현한다는 취지로,1968년 서울사직공원 안에 천궁암(이숙봉여사,이정봉,이회수의 3자매)이 있었던 자리에 단군전을 조성하여 공공건물로 인정받아 현정회가 그 해부터 10월 3일에 첫 개천절 봉축행사를 가졌던 것이고, 1969년에 이희승 씨가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것으로 알고있다.
 
1970년대에 홍익대학교 홍석창교수가 그린 현재의 그림이(77∼27)문공부에 등록되어 1973년 보호문화재로 인정받아 두 존영이 된것으로 알고 있다. 1972∼3년 당시 교과서 제작 채택에 따라
 
현 교과서에 실린 존영은 승봉의 대상으로 정한다 하여 채택되었고, 통일신라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존영은 신앙의 대상으로 하여 모셔진 것으로 알고 있다. 국조(國祖)로 여기는 단군은 단군자체를 신화(神話)로 일관하여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그 진의(眞意)여부에 대하여 아직도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며,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 분이 나라시조(始祖)다”라 는 국민적 합의(國民的合意)를 아직은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조선(古朝鮮) 약 220년간(기원 전 2341년 이전)의 역사 속에서 누가 단군이었는지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2.삼국유사와 단군세기, 환단고기에 단군이 기 제된 내용에 대하여(중학교 국사)
일연선사(1206∼1289)가 쓴 삼국유사에 단군에 대해 첫머리에ʻ위서(魏書)ʻ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朝鮮)이라 칭하고 중략...때는 요임금과 같은 시대다. 중략......천제환인(7세-3,300년~6만년)의 아들 환웅(18세~1565년)이 무리 3천명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중략......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한다.
 
여기 삼국유사 첫머리에 ‘위서(魏書)’에 이르기를........하였는데 이‘魏書’가 어느 시대의 것인지, 위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고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를 옮긴 연세대학교
고운기교수는 말한다.
 
또한 단군왕검의 도읍지 아사달은 어느 곳인지, 나라이름 朝鮮의 위치도 어느 지역인지, 현재까지는 재야학자나, 교계학자들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실정이라 하겠다.
 
막연하게 삼위태백 곤륜산으로부터 흘러들어왔다는 설과, 바이칼호수 쪽에서 들어왔다는 설은 우리는 물론 후손들에게 혼란만 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단군족보에 단군의 할아버지가 되는 ‘환인(桓因) 7世’가 누구들인지, ‘환국(桓國)’이라는 나라는 어느 곳인지, ‘桓因’의 아들 ‘환웅(桓雄)’들은 누구들인지도 확인 못하고 있는 실정들이다.
 
막연한 주장들만 가지고는 입증이 될 수 없다고 본다. 타 국가에 고증이 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해야 될 것으로 믿는다.
 
桓因 7世기간이 3,300년이라고도 하고 6만년이라고도 하며, 수명도 다양하게 기제 되어 있어 혼란을 가져오므로, 세계가 인정하는 확실한 국가단계(國家段階)와, 우리만이 주장할 수 있는 신화를 만들어 신화적인 전설이 따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환웅(桓雄)18世’중 첫 번째 ‘桓雄’이 3천 무리를 이끌고 내려와 웅녀(熊女)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면 마지막 桓雄은 누구이며, 또한 1565년의 기간이라면 단군을 낳은 桓雄이 첫 번째桓雄인지 마지막 桓雄인지 가려내야 될 것이다. 숫자상의 기간도 맞지 않는다고 본다. 桓雄 18世 중 14世는 2002년 월드컵 올림픽에 등장 되었던 치우천황으로 되어 있다.
 
고려말의 문신 행촌 이암(1297-1364)은 삼국유사저자 일연 김경명(1206~1289)보다 91년 늦게 태어나 단군세기(檀君世紀):47世)를 집필하였으나 고조선(古朝鮮) 시대(4500년 이전) 단군으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학계교수들과 사학자들의 관계에 상고사에 대해 의견들의 합의점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봐야될 것이다.
 
서로의 주장들을 앞세워 양보를 못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다툼은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바른 정립이 설 때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학문(學問)은 우리만의 주장으로는 안 된다고 본다. 특히 역사(歷史)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만의 고증(考證)이 아니라 고조선시대(古朝鮮時代)이니 만큼 세계(世界)학자들이 인정할 수 있는 차원 높은 단계로 정립되어야 된다고 본다.
 
세계학자들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인류역사단계(人類歷史段階), 문자(文字)가 생기고 최초(最初)의 문화단계(文化段階)와 국가가 성립된 시기(時期)를 찾고 있으나, 정답을 얻어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들이며 학계(學界)의 통일(統一)된 정설(正說)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류의 시원지(始原地)에 대해 많은 연구(硏究)들을 하고 있지만 인류최초 국가단계(人類最初國家段階)도 만만치는 않다고 봐야 될 것이다.
 
최초의 국가단계에 이르러서의 문자는 어떤 것이며 그들의 생활사는 어떠하였는지, 계속 조사하고 더 많은 연구 자료를 만들어 발표하여 야 될 것이다.
 
3. 단군의 고조선 국가성립과 연도에 대하여
 
고조선 건국연호는 올해로 단기 4341년이 아니고 더 올라가야 된다고 본다. ‘조선(朝鮮)’이라는 文字에 ‘朝’字가 성립되기 시작
한자는 기원 전 약 25세기 이전으로 알고 있다.
고조선의 개국 시기는 기원 전 약 45세기 이전부터 기원 전 약 43세기 이전까지, l代에서 9代까지 약 220년간 초기 국가단계(初期國家段階)가 있었던 것을 몇몇 이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찬란하였던 역사를 역사의 뒤안길로 숨겨 놓아서 수천 년 동안 많은 이들이 학문을 뒤엉켜 놓았다고 봐야 될 것이다.
 
4.선사시대의 생활에 있어서 언어적으로 개선해야 될 점
(중학교 국사)
1) (p.8)
우리 민족은 인종적으로 ‘몽골인종에 속하고’ ........중략있다는 서술에 대하여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 (p,9,9쪽)
......그들이 살았던 집터나 ‘쓰레기더미’.........중략,감성이 민감한 청소년들에게 ‘쓰레기더미’라는 서술을 꼭 기재해야 되는 것인지, ‘조개껍질’ 표현이 어떨까 생각을 하여 본다.
 
3) (p,11)
구석기시대나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토기나 생활도구를 만들만큼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고도문명의 역사단계를 이루어가고 있었다는 서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 (p.12.2쪽)
.....돌 갈판에 곡식을 갈아서 음식을 .........중략,우리 선조들이 일찍부터 ‘자연’을 사랑할 줄 알았고 자연과 더불어 친 자연적인 생활도구를 활용할 줄 알았던 지혜로운 민족이었음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2쪽) .....인간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해, 달, 산, 강, 동물, 큰나무 등에 영혼이 깃들여 있다고 믿었으며...........중략,조선시대에는 해, 달이나 사람에게 이로운 동물들을 자손들 이나 종족들에게 ‘씨칭(氏稱)’이나 ‘표씨’로 정하여 주던 시대 이였음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5) (p.13)
청동기시대의 시작
한반도와 만주지역에는 기원 전 2000년경에서 기원 전 1500년 경에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다.......중략,청동기시대는 기원 전 약2000년경이 아니고 기원 전 약 2400 년 이전으로 보아야 될 것이다.
 
<달라진 생활모습>
방울의 의미와 생활농기구로 쓰이던 도구가 나중에는 전쟁도구에 사용하게 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단계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6) (P,14,15)
청동기시대의 사회 모습
고조선시대에 벼농사가 시작된 동기와 벼이삭의 상형문자( )로 된 이름이 누구인지 밝혀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시대부터 제왕시대(帝王時代)로 접어들기 시작하여 그 동기를 알려주는 설명이 필요하고, 무덤에는 평소에 사용하였던 청동기에 명문을 새겨 놓은 제기종정(祭器鐘鼎)서부터 밥그릇까지 함께 묻어 두므로 해서 지금 우리가 밝히고 있는 그 시대의 귀중한 자료로 당시의 생활사를 알게 된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고, 세계에 내어 놓을 수 있게 된 동기가 되었음을 알리는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7) (P.18.8쪽)
단군의 고조선건국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에서 ‘웅족(熊族)’은 누구이며 ‘호족’은 누구인가 한문의 글자 ‘뜻’ 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읽기자료’에서 단군의 건국이야기는 면밀히 검토하여 다시 기술해 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8) (P.19)
...기원 전 4세기....기원 전 2세기...중략 ‘요령지방 중심으로’가아닌 보다 더 밝히고 넓혀 12주가 어디였고, 9주는 누가 다스렸으며, 그 장소는 ‘어디였다’라는 고증을 하여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움글’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이전에 그 외 고조선이 또 있었음을 서술하고 누가? 어떤 성씨가? 기자조선이 되어 나라를 세웠는지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려 줄 필요가 있다.
 
9) (P.20)
고조선의 사회 모습
법률 8개 조항이 다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10) (P.21)
고조선시대의 청동기에 새겨진 고 금문을 통하여 알려 줄필요가 있고 철기시대 이전의 최초의 문자 등을 기재해야 된다고 본다.
 
11) (P.23)
여러 나라의 등장
..고조선이 만주와 한반도....중략, 만주보다 더 확장되어야 되고 지도도 바뀌어야 된다.
 
12) (P.24)
법률과 풍속
고구려의 서옥제(일종의 데릴사위제)는 고구려에서 시작된 것 보다 더 올라가 고조선 국가단계 시대에 ‘푸나루아’식이바로 누비혼인 시대였다는 교육과 모계사회였던 그 시대의 사회생활규범 교육이 필요할 것이며, 조상숭배사상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3) (P.26)
하늘에 제사 지내는 까닭은?
...인간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해, 달, 산, 강, 동물, 나무 등 에....중략, 고조선시대에는 해, 달 등을 사람의 “名”으로 혹은“씨족(氏族)”으로 삼았기 때문에 하늘을 섬기고 祭의식을 하여 자연숭배와 더불어 祖上을 섬겼던 것으로 보아야 될 것이다.
 
<고등학교>
 
국 사
1. 선사시대의 생활
<학습개요>, ...우리 민족은 인종적으로 몽골인종에 속하고 어족으로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중략,
우리 민족이 몽골인종이나,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것은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  선사시대의 전개
   1) (P.16)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정착생활을 하며 ‘씨족’을 중심으로 ‘부족사회’를 이루었다.......중략,
‘씨족’이나 부족사회’가 이루어진 것은 우리 고조선시대가 형성되어 ‘文字’가 생기고 王의 체제(體制)인 국가(國家)단 계로 형성 되어 갔다. 또 ‘氏’ 字가 나오고 ‘族표’가 표시되 므로 부족사회(部族社會)로 접어들어 그 이전에 무질서한 사회를 바로잡아 주는 ‘푸나루아’시대인 누비혼인시대가 열 리고 질서(秩序)가 잡히는 고조선시대(古朝鮮時代)가 열린 개벽의 시대라 할 수 있다.
   
(2) 선사시대의 세계
  인류의 기원
  원시인류의 진화 (P.17,및3쪽)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한반도와 일본뿐만이 아니고 중국의 많은 지역이 연결이 되어 있었다고 생각 한   다.

(3)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P.18) 및 3쪽
  ,..우리나라는 철기시대부터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  ,,중략,
우리 문자는 청동기시대에 접어들면서 최초(最初)의 文字는' ᛁ ” 이 된다.
다음에 ‘조선(朝鮮)’의 ‘朝’字가 형성되고 ‘鮮’字 가 나오기까지는 고조선(古朝鮮)시대에서 약 150여년 이상이 된다고 봐야 될 것이며, 여기서부터 천지인사상(天地人思想)과 삼신사상(三神思想)이 나오고 조상(祖上)을 섬기게 되는 상형 문자(象形文字)가 형성된다.
역사(歷史)시대는 문자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청동기(靑銅器) 시대  이후를 말한다.....중략,
‘文字’는 청동기(靑銅器)시대 이후가 아니고, 그 시대부터 文 字가 나오고 최초의 화폐(貨幣)가 나오게 되므로 역사시대가 열리고 국가단계(國家段階)가 시작(始作)되었다고 봐야 될 것 이다.  

2. 우리나라의 선사시대
우리 민족의 기원 (P.19)
지도와 민족의 기원을 다시 서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석기시대의 생활(P.22,23,24)
우리 역사의 유적이 움집만 있다 하여 ‘대개’라는 언어로 마 치 거의가 움집만이 있었던 것으로 축소하여 인지시킬 필요 는 없다 하겠다.
우리는 당시에 ‘성(城)’이 있었고 ‘제왕(帝王 )’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장(市場)’이 형성되었으며‘화폐(貨 幣)’도 나오게 되어 상당한 문화단계(文化段階)로 접어들게 되었으므로 움집은  서민들의 수준으로 보아야 될 것이다.
또한 태양(太陽)이나 물에 대한 숭배(崇拜)나 조상숭배(祖上 崇拜)가 누구서부터 시작되었고‘제(祭)’字의 始原, 종묘(宗 廟)의 시작과 ‘종묘(宗廟)’의 文字가 생기게 된 유래와 ‘종묘 사직(宗廟社稷)’이란 문자가 생기게 된 유래를 서술하여 줄 필요가 있고, 선사시대문화권지도(先史時代文化圈地圖)가 다 시 그 려져야 될 것으로 생각한다.      

3. 국가의 형성
(P.26,27,29,31,32,33)
정확하게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을 청동기 고금문(古金文)에 기 록된 문자를 통하여 기원전 2500년 이전부터 하(夏)나라 이전의 古朝鮮 국가가 형성되는 당시의 생활사 당시의 문화수준, 상형문 자(象形文字)의 문헌사료를 모아 각계의 연구(硏究)진들로 하여 금서로 제휴하게 하고, 서로의 의견들을 제시하게 학계(學界)나 인류사(人類史)에 내어놓을 수 있게 함으로써 이 시대에 크나큰 업적(業績)이 될 수 있다고 보며, 바로 지금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맺는말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만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 한다.
선대조상(先代祖上)들의 생활과 삶을 걸어온 발자취이고 기록이다.
우리는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았으므로 정확한 정답과 해답을 얻기는 힘이 들 것이다. 과거(過去)조상들의 삶과 생활이 오늘 의 우리에게 교훈(敎訓)이 되고 본받을 일을 받들어, 당시의 문화를 짐작하여 우리 후손(後孫)들에게 떳떳하게, 우리가 자랑 스러운 민족(民族)이었음을 알려 주고, 교육(敎育)시켜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의 우리의 사명(使命)이고, 책임인 것이다. 이 시대의 대부분 학자(學者)들은 서로의 주장을 한 발씩 물러서서 제휴 하여야 될 것이며, 古代사회의 문화와 과학적인 배경으로 연구한 것을 공유하여 가장 한국적(韓國的)인 것으로 세계시장(世界市場)에 내어놓을 시기(時期)가 아닌 가 생각하여본다.
 
과거의 잘못은 서로 시정(是正)하고, 있는 그대로를 연구(硏究) 하여 후손(後孫)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줄 수 있는 지혜를 모아 야 될것이다.
후세(後世)들에게 경제성(經濟性)도 되고, 고대국가(古代國家)의 존재(存在)성과 더불어 지대한 문화가치를 창출(創出)해내야 될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할일은 모두가인정하는 국가(國家)의 시조(始祖)를 하루속히 정립(定立)하여 정신적 지주(精神的支柱 )로 모시는 일에 전력(全力)을 다하여 무너져 가고 있는 위계질 서(位階秩序)를 회복(回復)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될 것이다.
나라 조상(祖上)이 부재중(不在中)이라 나라 대통령(大統領)이 선출되어도 국군묘지(國軍墓地)에 가서 참배(參拜)를 할 정도이다.
거기는 공동묘지(共同墓地)지 나라어른이 계신 이 아니라고 본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의 자손 (子孫)들의 사명(使命)이라면 외국에서 국빈(國賓)이 왔을 때 먼저 인사시킬 “나라어른시조(始祖)”의 자리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인정할 만한 나라 祖上을 모신 국조전(國祖殿)이 없게 되니, 10월 3일(음,양) 개천행사를 여기저기서 하고 있어, 민족(民族 )의 자존심(自尊心)이 망가지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이 나라에 관광객(觀光客)을 끌어들이려면 모두가 인정하는 국조전(國祖殿)이 세워져야 될 것이다.
그리고 청동기(靑銅器)의 古金文에서 밝혀지고 있는 반만년( 半萬年)의 歷史에서 일어났던 그 시대(時代)의 생활사(生活史)와 그 시대의 숨결을 들으며 연구(硏究)와 교육(敎育)을 시켜 야 될 것으로 믿는다.
무덤은 무덤대로, 벽화는 벽화대로, 문자는 문자대로 각양각색 의 그동안 硏究하여온 生活文化 결과물들을 共有제휴하여, 내어놓게 해야 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존재(存在)가치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전개되어 가고 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世界와 우리는 멈추었던 과거(過去)의 순간(瞬間)들이 다시 깨어나고 있는 시기라고 본다. 더불어 새로이 태어나고 있는 벅찬 일들이 눈앞 에다가오고 있음을 자각해야 될 것이다. 어느 누구가 해야 할 일이라면 우리가 하고 지금 해야 될 것이다. 수천 년의 歷史가 또 다시 왜곡되고 지워지기 전에 지금 우리의 후대가 밝히지 않으면 지나쳐 버리게 될 것이다.

미래(未來)의 主人公인 나라 자손(子孫)들에게 혼란(混亂)을 안 겨주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지금이라도 고쳐놓아야 할 것이다.
나라의 대통령사진도 한분으로 되어있고, 가가(家家)호 에 선친조상(先親祖上)의 진영(眞影)도 한 분 으로 되어 있고, 미물 곤충의 벌도 두 마리가 있으면 한 마리가 떠나거늘 나라 국조의 존영(尊影)이 두 분으로 모셔져 있다는 것은 혼란을 가
져올 뿐 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이 나라의 위상으로 보아 후손(後孫)들에게도 바르게 일러 주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끝.
                      2008년  10월
                             (社)檀君先烈精神硏究中央會
                                古朝鮮硏究員, 홍 혜 수
                                전화-018-214-1556
                         3 hanmail.net

             ※ 이글은 국민신고로 접수 되어 정책으로 받이 드려진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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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수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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