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사시대의 생활
<학습개요>, ...우리 민족은 인종적으로 몽골인종에 속하고 어족으로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중략,
우리 민족이 몽골인종이나,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것은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 선사시대의 전개
1) (P.16)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정착생활을 하며 ‘씨족’을 중심으로 ‘부족사회’를 이루었다.......중략,
‘씨족’이나 부족사회’가 이루어진 것은 우리 고조선시대가 형성되어 ‘文字’가 생기고 王의 체제(體制)인 국가(國家)단 계로 형성 되어 갔다. 또 ‘氏’ 字가 나오고 ‘族표’가 표시되 므로 부족사회(部族社會)로 접어들어 그 이전에 무질서한 사회를 바로잡아 주는 ‘푸나루아’시대인 누비혼인시대가 열 리고 질서(秩序)가 잡히는 고조선시대(古朝鮮時代)가 열린 개벽의 시대라 할 수 있다.
(2) 선사시대의 세계
인류의 기원
원시인류의 진화 (P.17,및3쪽)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
한반도와 일본뿐만이 아니고 중국의 많은 지역이 연결이 되어 있었다고 생각 한 다.
(3)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P.18) 및 3쪽
,..우리나라는 철기시대부터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 ,,중략,
우리 문자는 청동기시대에 접어들면서 최초(最初)의 文字는' ᛁ ” 이 된다.
다음에 ‘조선(朝鮮)’의 ‘朝’字가 형성되고 ‘鮮’字 가 나오기까지는 고조선(古朝鮮)시대에서 약 150여년 이상이 된다고 봐야 될 것이며, 여기서부터 천지인사상(天地人思想)과 삼신사상(三神思想)이 나오고 조상(祖上)을 섬기게 되는 상형 문자(象形文字)가 형성된다.
역사(歷史)시대는 문자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청동기(靑銅器) 시대 이후를 말한다.....중략,
‘文字’는 청동기(靑銅器)시대 이후가 아니고, 그 시대부터 文 字가 나오고 최초의 화폐(貨幣)가 나오게 되므로 역사시대가 열리고 국가단계(國家段階)가 시작(始作)되었다고 봐야 될 것 이다.
2. 우리나라의 선사시대
우리 민족의 기원 (P.19)
지도와 민족의 기원을 다시 서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석기시대의 생활(P.22,23,24)
우리 역사의 유적이 움집만 있다 하여 ‘대개’라는 언어로 마 치 거의가 움집만이 있었던 것으로 축소하여 인지시킬 필요 는 없다 하겠다.
우리는 당시에 ‘성(城)’이 있었고 ‘제왕(帝王 )’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장(市場)’이 형성되었으며‘화폐(貨 幣)’도 나오게 되어 상당한 문화단계(文化段階)로 접어들게 되었으므로 움집은 서민들의 수준으로 보아야 될 것이다.
또한 태양(太陽)이나 물에 대한 숭배(崇拜)나 조상숭배(祖上 崇拜)가 누구서부터 시작되었고‘제(祭)’字의 始原, 종묘(宗 廟)의 시작과 ‘종묘(宗廟)’의 文字가 생기게 된 유래와 ‘종묘 사직(宗廟社稷)’이란 문자가 생기게 된 유래를 서술하여 줄 필요가 있고, 선사시대문화권지도(先史時代文化圈地圖)가 다 시 그 려져야 될 것으로 생각한다.
3. 국가의 형성
(P.26,27,29,31,32,33)
정확하게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을 청동기 고금문(古金文)에 기 록된 문자를 통하여 기원전 2500년 이전부터 하(夏)나라 이전의 古朝鮮 국가가 형성되는 당시의 생활사 당시의 문화수준, 상형문 자(象形文字)의 문헌사료를 모아 각계의 연구(硏究)진들로 하여 금서로 제휴하게 하고, 서로의 의견들을 제시하게 학계(學界)나 인류사(人類史)에 내어놓을 수 있게 함으로써 이 시대에 크나큰 업적(業績)이 될 수 있다고 보며, 바로 지금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맺는말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만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 한다.
선대조상(先代祖上)들의 생활과 삶을 걸어온 발자취이고 기록이다.
우리는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았으므로 정확한 정답과 해답을 얻기는 힘이 들 것이다. 과거(過去)조상들의 삶과 생활이 오늘 의 우리에게 교훈(敎訓)이 되고 본받을 일을 받들어, 당시의 문화를 짐작하여 우리 후손(後孫)들에게 떳떳하게, 우리가 자랑 스러운 민족(民族)이었음을 알려 주고, 교육(敎育)시켜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의 우리의 사명(使命)이고, 책임인 것이다. 이 시대의 대부분 학자(學者)들은 서로의 주장을 한 발씩 물러서서 제휴 하여야 될 것이며, 古代사회의 문화와 과학적인 배경으로 연구한 것을 공유하여 가장 한국적(韓國的)인 것으로 세계시장(世界市場)에 내어놓을 시기(時期)가 아닌 가 생각하여본다.
과거의 잘못은 서로 시정(是正)하고, 있는 그대로를 연구(硏究) 하여 후손(後孫)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줄 수 있는 지혜를 모아 야 될것이다.
후세(後世)들에게 경제성(經濟性)도 되고, 고대국가(古代國家)의 존재(存在)성과 더불어 지대한 문화가치를 창출(創出)해내야 될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할일은 모두가인정하는 국가(國家)의 시조(始祖)를 하루속히 정립(定立)하여 정신적 지주(精神的支柱 )로 모시는 일에 전력(全力)을 다하여 무너져 가고 있는 위계질 서(位階秩序)를 회복(回復)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될 것이다.
나라 조상(祖上)이 부재중(不在中)이라 나라 대통령(大統領)이 선출되어도 국군묘지(國軍墓地)에 가서 참배(參拜)를 할 정도이다.
거기는 공동묘지(共同墓地)지 나라어른이 계신 이 아니라고 본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의 자손 (子孫)들의 사명(使命)이라면 외국에서 국빈(國賓)이 왔을 때 먼저 인사시킬 “나라어른시조(始祖)”의 자리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인정할 만한 나라 祖上을 모신 국조전(國祖殿)이 없게 되니, 10월 3일(음,양) 개천행사를 여기저기서 하고 있어, 민족(民族 )의 자존심(自尊心)이 망가지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이 나라에 관광객(觀光客)을 끌어들이려면 모두가 인정하는 국조전(國祖殿)이 세워져야 될 것이다.
그리고 청동기(靑銅器)의 古金文에서 밝혀지고 있는 반만년( 半萬年)의 歷史에서 일어났던 그 시대(時代)의 생활사(生活史)와 그 시대의 숨결을 들으며 연구(硏究)와 교육(敎育)을 시켜 야 될 것으로 믿는다.
무덤은 무덤대로, 벽화는 벽화대로, 문자는 문자대로 각양각색 의 그동안 硏究하여온 生活文化 결과물들을 共有제휴하여, 내어놓게 해야 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존재(存在)가치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전개되어 가고 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世界와 우리는 멈추었던 과거(過去)의 순간(瞬間)들이 다시 깨어나고 있는 시기라고 본다. 더불어 새로이 태어나고 있는 벅찬 일들이 눈앞 에다가오고 있음을 자각해야 될 것이다. 어느 누구가 해야 할 일이라면 우리가 하고 지금 해야 될 것이다. 수천 년의 歷史가 또 다시 왜곡되고 지워지기 전에 지금 우리의 후대가 밝히지 않으면 지나쳐 버리게 될 것이다.
미래(未來)의 主人公인 나라 자손(子孫)들에게 혼란(混亂)을 안 겨주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지금이라도 고쳐놓아야 할 것이다.
나라의 대통령사진도 한분으로 되어있고, 가가(家家)호 에 선친조상(先親祖上)의 진영(眞影)도 한 분 으로 되어 있고, 미물 곤충의 벌도 두 마리가 있으면 한 마리가 떠나거늘 나라 국조의 존영(尊影)이 두 분으로 모셔져 있다는 것은 혼란을 가
져올 뿐 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이 나라의 위상으로 보아 후손(後孫)들에게도 바르게 일러 주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끝.
2008년 10월
(社)檀君先烈精神硏究中央會
古朝鮮硏究員, 홍 혜 수
전화-018-214-1556
3 hanmail.net
※ 이글은 국민신고로 접수 되어 정책으로 받이 드려진 내용이다.